따뜻해 진 봄 날씨에 올해 연길에는 봄이 일찍 왔다 생각했는데, 4월에 들어 날씨가 다시 추워져 월요일 아침에는 창밖으로 하얀 눈 덮인 언덕을 보았습니다. 고아원 장애인 아이들과 운동 하는 시간에, 아이들이 밖을 보며 “눈과 비가 같이 와요”라며 눈이 녹는 것이 아쉬운 듯 이야기 하였습니다.
지난 3월에 선봉을 방문하여 빵공장에서 빵 반장과 반갑게 만났습니다. 겨울 동안 빵 생산과 현재 상황을 듣고 있는데 70일 전투로 동원 됐다 오후에 출근하는 지숙이와 경희가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이라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 참 순진해 보입니다. 방학동안에도 빵 생산은 계속 되어 추운 겨울에도 빵은 탁아소에 보내졌습니다. 요즈음 전기 상태가 좋은 편이라 빵 생산은 어렵지 않게 되지만, 동원들을 자주 나가 동원 나가 일하랴 빵공장에서 일 하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달걀이 많이 필요 한 우리 빵이 어떤 때는 부담이 되었는데 이 달걀들은 농촌 마을에서 몇 마리 씩 키우는 농가에서 모아 온 달걀이라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돼 준다고 생각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기로 했었습니다. 지난번 방문 때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힘이 돼줘야 한다는 빵 반장의 말에 같은 마음이듯 하여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빵공장이 있는 식품공장 지배인이 다른 곳으로 가고 새 지배인이 왔습니다. 전 지배인은 처음으로 같이 일하기 시작한 북한 사람이자 가장 오래 알던 북한 사람이기에 무엇인가 잃은 것 같은 마음과 아쉬움에 지난 2년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기가 힘든 이곳에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가고 같이 일할 수 있는 북한 사람들이 하나하나 늘어가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선봉병원에 들러 보니, 3월의 따뜻한 날씨이었건만 병원 안은 꽤 추웠습니다. 병원 원장은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고 새로 달아놓은 문들에 열쇠가 자꾸 고장 난다며 해결책이 없을까 물었습니다. 원장과 함께 소아과에 갔을 때에는 소아과 소장이 문을 고치려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작년에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머리에 수건을 질끈 매고 열심히 물건들을 트럭에서 내리고 있어서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인줄 알았는데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은 모습은 그때를 생각하며 미소 짓게 합니다.
선한 얼굴에 아주 자그마한 소아과 소장은 새로 변하는 모습의 소아과 병동에 무척이나 신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해 수해로 중단되어 끝을 못 내었던 소아병동 화장실은 완전히 마무리가 되어있었습니다. 지난 해 온돌을 놓은 소아과 병동은 따뜻한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아직 가구들도 별로 없고 의료 기구도 없어서 비어 있는 방들도 많지만 올 해가 지날 때쯤이면 어린 환자들을 잘 진료 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활기차고 희망이 찬 꼬맹이 환자들의 웃음소리를 기대 해 봅니다. 4월 초 방문 때 병실에는 꼬맹이 환자들을 끼고 엄마들이 쭉 누워 있었고 옆방인 침대가 3개 있는 병실에도 환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이유식을 하기 시작 한 아기들이 소화기 문제로 입원하는 경우가 잦다고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여 같이 마음을 할 수 있는 소아과 의사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곳에 연약한 실정에 그들에게 효과 있는 치료법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전문적 소아과 의사에 방문을 기대합니다.
70일 전투에 동원 된 사람들은 건물 보수나 건물 짓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또 각 사업처에서는 계획을 세우고 70일 안에 이것들을 완성해야 돼서 요즈음 곳곳마다 이 동안에 끝내야 되는 계획들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식품공장에도 병원에도 70일 전투의 남은 날짜 숫자에 열심히 노력하자는 문구들이 보입니다.
수해가 남기고 간 흔적들은 아직도 이곳저곳에 남아 있지만 그 일이 언제 있었는가 싶게 모두들은 그전과 다름없이 살아갑니다. 그 일로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소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최광렬 목사
LA기윤실 회원 여러분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올립니다. 꿈나무장학회 소식을 전하며, LA기윤실 정신에 입각한 장학회가 이곳에 존재해야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는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힘이 있는 나라지만 모든 국민이 골고루 행복한 사회는 아닙니다. 아직 사회안전망 구축이 미비합니다. 어려운 백성들이 많고 특히 가난한 동포 어린이들은 중국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찾아 꿈과 용기를 주는 일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민족 화해의 촉매역할을 중국 동포사회에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사는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합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 있고 소중합니다만, 더 나아가서 이들은 북한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조선족 사회의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가치가 정착될 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접촉한 이들이 화해의 중재자가 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남과 북의 오랜 이념의 달음질과 그동안 서로 불신하며 주고받은 상처를 삭이고 치유하는 중재자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꿈나무장학회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희망과 용기를 얻은 이들이 감당한다면 더 없는 영광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장학회는 여전히 민족사회를 섬깁니다. 우리글과 문화를 소중히 여겨 민족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돕습니다. 어려운 삶을 버텨내는 동포와 어린이들을 도와 희망의 미래가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아래의 글은 <중국조선족소년보>를 통하여 소개된 것으로 고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조선족 어린이지만 한족 사회에 익숙하게 사느라 우리글을 읽고 쓸 줄 모르다가 외할아버지를 통하여 우리글을 익혔다는 내용입니다. 중국에서 조선족의 정체성을 갖고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만만하고 호락호락하지가 않습니다. 그 자체가 힘겨운 싸움이며 지난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장학회에 마음을 모으는 것은 민족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투자입니다. 이 일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주신 기윤실 회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글을 알게 되여 기뻐요. 나는 산동성 연태시 숭문학교에서 공부하는 조선족 어린이랍니다. 원래 저는 조선말을 말할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몰랐던 어린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는 우리 민족의 글로 작문도 쓸 수 있게 되여서 참 기쁩니다. 저는 이 기쁨을 중국조선족소년보 독자 친구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연길시에서 태여나 공부하였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산동성 위해시에 왔습니다. 나는 태여나서부터 한족동네에서 살다나니 조선어 글자는 하나도 모릅니다. 그나마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를 보살펴주었기에 조선말은 알아듣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3학년에 진급할 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게 되였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소학교 조선어문 교과서 총 열두 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저에게 우리글을 배워주려고 말입니다. 이때로부터 나의 조선어글공부가 시작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에 2시간과 방학간의 시간을 타서 조선어 글자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 삼일은 우리집 식구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조선글로 쓸 수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조선어 자음과 모음을 써서 저의 침실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읽게 하였으며 한 주일에 한 번씩은 암송하여 써 어머니에게 검사 마치게 하였습니다. 또 단어카드를 만들어 제가 수시로 암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뿐이 아니였습니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외할아버지가 과문의 단어를 한어로 말씀하면 저는 조선말로 단어를 읽고 썼으며 짧은 글을 지었습니다. 그외 제가 과문을 잘 읽게 하기 위하여 매주일에 3일에 한 번씩 숙제가 끝나면 조선어 과문을 읽게 하였으며 한 달에 한 번씩 집 식구들 앞에서 과문을 읽거나 조선글로 된 짤막한 시거나 문장을 암송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글자로 일기 쓰는 련습을 시켰으며 학교에서 쓴 저의 한어작문을 조선글로 번역하여 쓰게 하였습니다. 제가 5학년에 진급하면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는 연길로 돌아가게 되였습니다. 연태부두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앉은 배가 떠나면서 “붕”하고 고동을 울리자 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짬짬의 시간을 타 조선어문 교과서를 보면서 조선어공부를 열심히 견지해 배우고 있습니다. 친구들, 저의 이 글을 읽고 제가 조선어 글자를 알게 된 기쁨을 리해할 만 하는가요” (김수연, 중국 연태시)
(최광렬 목사님은 중국에서 조선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꿈나무장학회의 책임자입니다.)
최OO 목사
오랜만에 인사를 드려 송구한 마음입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늘 북한의 동포들을 생각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북한에 기적의 젖염소와 황소를 보내는 일에 앞장 섰던 저의 부친 최성원 장로께서 현재 인하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2004년 이후 부친께서 암으로 북한의 사역을 계속할 수 없어 제가 대신하여 몇 차례 LA기윤실이 계획하던 일들을 수행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렇게 회원님께 글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친 최성원 장로의 민족 사랑정신에 비하면 저는 부끄러운 것이 많습니다만 LA기윤실 회원님들에게 부친의 근황을 알리며 다시 한 번 동족을 향한 사랑을 불태워 봅니다.
최성원 장로님은 LA기윤실 유용석 장로님과 함께 회원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으로 한 마리의 젖염소라도 더 북한에 보내려고 늘 노심초사하였습니다. 수천 킬로가 넘는 먼 거리를 지척인양 힘든 내색 없이 좋은 염소들을 구하기 위하여 중국 곳곳을 누볐습니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 염소들을 운반할 때면 염소들과 함께 트럭의 짐칸에서 염소들과 함께했습니다. 바다를 건너는 경우에도 편안한 객실에 머물지 않고 염소와 함께 하였습니다. 방목지가 있는 연변에서는 염소들이 한족의 콩 밭으로 들어가 콩잎을 따먹는 일이 있었는데 분노한 한족 주인이 말을 부리는 채찍으로 부친을 내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젖염소들이 한족 동네의 곡식을 못 쓰게 하자 누군가 독약을 뭍힌 옥수수를 염소의 방목장에 쏟아 놓기도 했습니다. 먼거리의 여행으로 염소들이 죽어가자 죽어가는 염소의 입에 당신의 입을 맞추고 인공호흡도 하였습니다. 양구창이라는 피부병이 돌아 염소들의 입이 헐고 구더기가 끼기 시작했을 때 부친은 염소 한마리 한마리를 무릅에 앉히고 하루에도 몇번씩 고름을 짜내고 소독물로 닦아냈습니다. 설사를 할 때면, 생풀을 베어다가 건초를 만들어 주어야했습니다. 연로한 노인이 그런 쉽지 않은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한 사랑 때문이었고, LA기윤실 회원님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병들어 가는 신체를 돌보지 않고 오로지 민족만을 바라보며 헌신하셨던 제 부친은 이제 물 반 모금을 마시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부친의 모습을 보며 굶주린 동족에게 한 모금의 우유와 한 쪽의 빵이라도 전하고 싶어 하셨던 유용석 장로님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나이는 드셨지만 민족사랑은 늘 청년이신 분들입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소식을 전하면서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 귀한 어른들의 다음 시대에 누가 그 일들을 이어갈까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입니다. 저 자신이 목회를 하면서 전처럼 직접적인 사역을 할 수 없어 아쉬움이 큽니다.
아쉬움이 많지만 할 수만 있다면 연길에 부친이신 최 장로님께서 마련하신 33만 평이 임야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 북한으로 갈 염소들이 방목되었죠. 그곳이 10년 가까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조선족 마을로 50여 가구의 연로하신 조선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농사를 손으로만 짖는 북한 동포들에게 최 장로님이 마련하신 임야를 활용하여 북한에 일소를 보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북한의 동포들이 농사를 짓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LA기윤실이 이 전에 젖염소로 굶주린 북한의 동포들을 도왔다면, 이제 일 소를 보내어 그들의 거친 손발에 힘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평안을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최00목사님은 중국을 왕래하며 북한동포 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곽동원 선교사
LA기윤실 회원 여러분 그동안 주안에서 평안 하셨는지요? 이곳 앗씨노프카라는 블라디보스톡 인근 시골 마을엔 벌써 3일째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마을에 화훼센터로 사용할 농장을 구입하고, 2기 사역으로 우리 고려인들에게 특수 작물과 조경수 재배를 통해 소득 증대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준비해 왔습니다. 건평 3.000sq의 2층 통나무 건물에 대지 1에이커 정도의 규모로써 앞으로 10여 년간 우리 고려인들과 함께 기도하며 나아 갈 것입니다. 아직 건물이 센터로써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어 한 달째 공사 중에 있습니다.
사역의 효율과 투명성을 위해 “들꽃향“이란 이름으로 법인등록을 신청 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땅위에 7m×50m짜리 특수 비닐하우스 2동을 지어 1기 사역 중 꽃재배로 정착한 1세대 꽃재배 농가 중 젊고 능력 있는 의욕과 신앙을 가진 가정을 선발하여 후원할 계획입니다.
센터 리모델 공사 도중 간간히 2016년도 꽃재배 현황을 돌아보았습니다. 작년 1월 불의의 화재로 가축농장을 잃은 보리소프카 장아니스타는 올해 겨울 내린 폭설로 인해 다시 한 번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섯 동 비닐하우스에 자라고 있는 꽃들을 보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노보루사노프카 지역 12 꽃재배 가정은 인근 스파스크 꽃시장과 멀리 블라지보스톡 인근 신설된 하바롭스크 국도옆 꽃시장에 새로움 부스를 설치하며 5월초 개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씨앗을 공급받은 인나라는 자매는 기초 배양토의 오염으로 발아된 꽃들의 일부가 녹아버려 가슴이 아프지만 첫해 재배 자로써는 무난한 출발입니다. 아직 재배 농가 전체를 돌아보지 못했지만 5월초 까지는 모든 점검이 가능할 것입니다.
“들꽃향” 센터의 정상 가동과 헌당식을 내년 4월로 잡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능력은 부족하고 이젠 나이도 육십 중반입니다.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 누구에게 후원을 요청하기 이전에 제 자신의 최선을 하나님께 드릴 때 도우시는 하나님을 여러 차례 경험한 저로써는 하나님과 기도 동역자들만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아직 우리 마을에 인터넷 설치가 안 되어 근처 도시에 나와서 급히 소식 전하므로 두서가 없습니다. 차차 여건이 충족되는대로 다시 연락 올리겠습니다. 모두 주안에서 평안 하시고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곽동원 선교사님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의 화훼재배를 가르치며 목회하고 있습니다.)
최요섭 목사
저는 잠시 태국 치앙마이에 나와 있습니다. 치앙마이는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 3국에 걸쳐 넓게 펼쳐진 황금삼각지대라고 불리는 지역의 관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전 세계 아편의 삼분의 이 정도가 Golden Triangle 지역에서 생산되었고 현재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산간지역의 많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불법노동과 성매매 등에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났어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Stateless 사람들에게는 배움의 기회와 평등한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녹녹치 않습니다.
황금삼각지대Golden Triangle 에서 만나는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총기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배움과 삶의 빈곤은 아이들의 눈에 가득하던 총기마저도 훔쳐갑니다. 저희가 어두운 이들의 미래를 밝혀주는데 잘 쓰여 질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거의 주지스님 수준인 보우는 한국에서 저희와 함께하면서 예수님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태국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귀한 통로가 되었고 그를 통해 열리는 선교의 문은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아카부족 한 곳에서 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고 또한 장기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지택 (Golden Triangle Education Center)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고쳐야할 부분들과 채워져야 할 재정도 많지만 마치 홍해바다를 가르시는 듯 주님께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특별히 태국 분들의 적극적인 헌신과 도움은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희 선교사들에게 큰 힘과 보호막입니다.
한국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돌아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이곳에서 시작된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어서 싱가폴, 러시아, 말레이시아, 미국등지에서 이곳을 방문하였고 또한 함께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예수를 만나고 돌아간 사람들이 선교에 힘을 더하고 있어 저는 너무 좋습니다. 한국에서의 지난 10년이 열매 맺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저는 2주정도 이곳에서 지택보수공사를 진행과 아카족 학교가 잘 정착되어지도록 돕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여러 산간부족들을 어루 만져주시길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와 후원으로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최요섭 목사님은 서울에서 외국의 유학생들을 섬기며 목회하고 있습니다.)
채상군 목사
임 장로님, 유 장로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섬기시는 교회와 두 분의 가정 모두 평안하시지요? 늘 주님의 은혜가 넘치리라 믿습니다.
사라전도사가 섬기는 교회는 주의 은혜가운데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장소를 재계약 했습니다. 현재 거의 한달 반 동안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새로운 교회장소를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인건비가 많이 비싸져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모든것을 성도들과 함께 직접공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비용을 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직접 몸으로 참여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하나하나 진행해가면서 저희들은 너무 부족하지만 아버지께서 지혜를 주시고 붙잡아 주심을 모두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다. 늘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임대한 장소도 5월초까지면 만기 되어 공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십일 정도 더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세요.
(채상군 목사님은 조선족 목회자로 한족과 조선족 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