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기윤실 공지사항 – LA 기윤실 2016년 12월 북방편지

선교지에서 온 편지

SOO 위원

(S00 선교사는 우리가 직접 파송해서

북한에 있는 사랑의 빵공장을 감독하고 있는 분입니다.)

기윤실 회원님께

2016년 11월 14일

이번 수해로 회령과 무산에 12,000 세대의 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직접 회령과 무산으로 구호물자와 피해복구 물자들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나선을 통해 많은 물자가 들어가는 것을 나선으로 들어가는 국경에서 줄 서있는 트럭들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나선으로 들어간 물자들은 기차로 회령이나 무산으로 운송된다 합니다. 마음으로 그곳 사람들을 생각해주고 사랑의 손길을 보내시는 귀한 마음들… 감사합니다.

10월 27일경 선봉날씨는 무척 추웠습니다. 아직 집들이 안 지어졌는데 수해피난민들에게 이불이 제대로 있을까 구호물자 중에 이불이 절실히 필요 하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도원이 이제 곧 공사가 끝날거라 말합니다. 영하에 날씨가 된 선봉, 가을을 뛰어 넘어 겨울이 됀 것 같습니다. 선봉지대에는 집이나 인명 피해는 없었어도 두만강 주변 밭, 논들에 피해가 많았습니다.

물에 잠겼던 밭과 논들의 색은 건강한 밭과 논들과는 달랐습니다. 올해도 저 시골구석은 많이 힘들겠네요. 11월 초인데 눈이 참 많이 옵니다. 펑펑 내리는 눈, 세상이 하얗게, 가는 곳마다 하얗게, 밟고 지나간 눈 위에 또 눈이 쌓여 하얗게 만듭니다. 넘어질까 조심스럽게 걸으며 넘어지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하얗게 변한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에 내 마음 따뜻해 집니다.

11월 8일 이렇게 눈이 많이 왔을 때에 Freeway를 다 막아 놓아 멀리 가는 시외버스 들이 안 다닌다는 것을 모른 나는 아침 일찍 선봉으로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버스 터미널은 깜깜했고 택시 운전사들이 택시 타고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힘들게…힘들게 권하 국경에 도착 했을 때 국경에서 군인들이 국경을 막 막고는 2시간 반 후에 오라 하였습니다. 원정 국경에서 지도원이 나를 그때까지 기다려 줄지 몰라 불안하기도 했고 국경 세관건물들은 국경이 닫혀 있을 동안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외에는 들어가 있을 수 없기에 지도원이 추운 날씨에 고생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겨우 원정 세관에 도착했을 때 나의 지도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권을 검사하는 booth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지도원에게 ‘연락 할 수는 없을까요?’라고 물어 봤을 때 ‘연락할 수 없습니다, 기다려 보십시오.’ 라고 미소 지며 말하던 사람의 얼굴에서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게 도착한 원정 세관, 내가 사정 얘기를 했을 때 그전 같이 무뚝뚝하지 않고 친절했던 그들이기에 힘들었던 것이 더욱 좋은 경험으로 남아지는 것 같습니다. 좀 기다렸을 때 저쪽 건너편문으로 들어서는 지도원의 모습에 나는 너무 기뻐 손을 막 흔들었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나의 인사에 별로 반응을 안 하던 원정 세관 사람들이 요즘 가끔 나에게 ‘혼자 들어오십니까, 오래만입니다.’ 라고 말을 건넵니다. 이젠 3년이나 되니 익혀진 얼굴들, 3년이나 걸려 조금씩 마음을 여나봅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기 전에는 군데군데 수해로 망가졌던 도로들 복구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젠 도로 곳곳에서 삽으로 눈을 치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볼이 발갓게 되어 삽을 잡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아낙네의 모습에 내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회령, 무산, 두만강 근처 수해복구로 짓던 집들이 다 지어졌답니다. 그러나 지도원의 대답에는 작년 수해 때 선봉지역의 피해복구 때와 같이 자랑스럽게 자신있게 대답하던 것과는 달리 무엇인가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빵공장에 도착 했을 때 빵공장 안은 따뜻했습니다. 빵공장 한 모퉁이에 난로 대신 만들어 놓은 온돌은 추운 겨울에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이불을 들치고 따뜻한 아랫목으로 들어가던 나의 어렸을 때를 기억나게 합니다. 이런 따뜻함에 이렇게 행복 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전기 사정이 좋은 요즈음도 전기가 안 들어오는 날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느 날은 빵을 며칠 것을 한꺼번에 만들거나 밤에 일을 해야 합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와서 길들이 안 좋을 때는 선봉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빵들이 가기 힘들텐데 걱정이 됐다가도 올해 공급소에 새로 생긴 트럭이 문제없이 먼 곳까지 가줄거라 생각합니다. 선봉시내 안에 탁아소나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의 엄마에게 아이들이 우리 빵을 먹는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선봉에서 차로 거의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유치원에서 우리가 만든 빵을 아이들이 먹고 있더라는 말을 듣습니다. 집단 농장에 있는 유치원에서 우리 빵을 아이들이 먹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 빵은 선봉지역에 55개정도의 유치원, 탁아소에 돌아가며 가는데 빵들이 골고루 잘 갈 수 있게… 우리가 만드는 빵들이 아이들이 자라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되길… 그리고 이 빵들이 아이들에게 생명의 떡이 됄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소아과 병동에 큰 병실과 작은 병실에 아이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작은 병실에는 침대가 3개 있는데, 중학생 남자 아이들이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신장염으로 입원한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다른 큰 병실에는 아기들과 엄마들 그리고 2명의 중학생 정도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입원해 있었습니다. 조그만 아이들이나 아기들은 폐렴, 소화기관 문제라 합니다. 소화기관 문제인데 왜 입원까지 할까 이상해서 물어 봤더니 설사와 열이 난다 합니다. 여자아이들도 방광염으로 입원하였다는데 안타까운 이곳 실정을 느끼게 합니다.

어촌 마을에 조그만 유치원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치원이 막 파하는 중이라 몇 명의 아이들이 손에 빵을 쥐고 먹으며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치원 안에 들어가 지도원이 선생님과 이야기 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밖에서 뛰어 들어 오더니 나를 보고는 꾸벅 인사를 합니다. 뒤로 묵은 머리가 숙일 때 땅에 닿을 정도로 꾸벅. 한 교실에는 7,8 명의 아이들이 아직 교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교실 한 벽 가운데 페인트로 벽을 칠해 칠판으로 쓰고 있는 이 교실은 내가 보아왔던 어떤 유치원보다 미약한곳이었으나 쫄망쫄망 서서 나에게 이름을 말해주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더 정이가고 예쁜 아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선물 같습니다. 이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2016년 11월 22일

안녕하세요?

여긴 어제 눈이 잠깐 오더니 무척 추워졌습니다.

빵공장에는 빵공장 복도로 들어오는 입구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설명 드린 것 같이 허락을 받고 시작해야 하니 estimate을 내서 달라고 했는데 제가 미국을 갔다 오는 동안 공사를 그냥 시작 했습니다. 전체 비용은 인건비($450)을 포함하여 $2,000 정도 듭니다. 인건비는 공장 사람들이 공사를 하겠다고 하였는데 지난번 방문 때 저에게 준 청구서에는 인건비 까지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방문 떄 지배인은 회의가 있다고 해서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 방문 때에 만나서 이번 공사에 문제점들을 토의 하겠습니다. 문들은 밖에서 만들어 갑니다. 아마 다음 주에는 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건이 많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물건과 같이 트럭을 사용하는데, 선봉으로 가는 트럭들이 별로 없어 물건 실어 다 줄 트럭을 찾느라 시간이 좀 지체 됐습니다. 공사는 문이 들어 간 다음 한 두주 안에는 끝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식품공장에는 Epoxy 를 바닥에 칠해야 돼는 regulation이 생겨서 이번 문들과 같이 Epoxy 와 몇 가지 빵재료들이 같이 트럭으로 들어 갈 것입니다. 12월에는 모든 것이 정리 될 겁니다. 12 expense report에 이번 공사 expense report을 더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병원 소아과에 이불 10개, bed sheet 20개를 나진에 있는 피복공장에서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번 가을에 다른 특별한 것은 병원에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penny ㅅㄱ에서 빵을 11/24-12월 방학 (한 달) $1,000, 만들어 선봉 유치원 탁아소에 보내길 부탁했습니다. 문제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빵은 15,000개 정도 더 할 수 있습니다.

penny ㅅㄱ에서 유치원에 마음이 있어 알아보던 중 나진에 있는 조그만 어촌 마을에 유치원을 배정 받았습니다. 제가 추천 했던 장학생에게 장학금 전달하러 연길에서 5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배ㅂㅈ 회원님이 연길에 오셨을 때 같이 갔었는데 그 아이들을 보고 이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곳에 오셔서 저를 많이 챙겨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나진에 있는 어촌 마을에서 본 아이들 이야기를 이메일에 썼더니 이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배회원님이 LACEM에 보내 주신 fund는 배 회원님이 원하시는 곳에 쓰여 질것이지만 같이 ㄱㄷ와 마음을 합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12월에 돌아가서 자세한 것은 보고 드리고 내년에 계획도 같이 세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서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그 가운데 ㅈ님이 항상 같이 하시며 온전히 인도되고 저의 마음 또한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ㄱㄷ 하며 한 발짝 한 발짝 씩 나갑니다. 조그마한 것에 ㅈ님의 마음이 향하여 있으심 귀하게 간직하고 그 땅을 밞겠습니다. 같이 ㄱㄷ해 주세요.

Thanks giving 날 저는 선봉과 나진을 돌고 있을 거예요.

모두들 감사가 넘치는 Thanks giving day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6년 11월 29일

빵공장에 물건들이 12/1일에 훈춘에서 연길로 들어 갈 예정이었는데 운송하시는 분의 다른 물건들이 아직 안 도착하여 아마 다음 주 월요일에 들어 갈 것 같습니다. 식품공장들에 새로 생긴 regulation에 의해 Epoxy를 바닥에 칠해야 돼서 Epoxy, 문, 빵재료(유화제), 달걀판이 들어갑니다.

11월 말 부터 Penny ㅅㄱ의 빵 15,000개를 합하여 한 달에 65,000개가 생산됩니다. 방학 동안에는 탁아소 아이들을 위해 계속 만들기를 원하여 작년과 같이 숫자를 줄여 만들려 합니다. 다른 빵공장에서는 겨울 동안에는 안 만들기에 도움을 더 줄 수 있는 시기일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병원 입원실에 이불 10개와 sheet 20개를 나진에서 맞추었습니다. 이번 주에 찾아 병원에 갖다 주기로 했습니다. 원정에서 가까운 두만강 근처 농장 마을에 있는 유치원을 방문 했는데 그곳에 우리 빵공장의 빵들이 와서 잘 먹는다 합니다.

지난 주 방문 때는 새로 온 처장이 저를 안내 하여 조금 서로를 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 새로 온 식품공장 지배인하고도 잘 알고 있어서 빵공장에서 모두 반갑게 만났습니다. 내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해외동포처’라 지금 지도원들이 모두 너무 귀하게 여겨집니다. 어쩜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사람들, 같이 지낸 시간들을 기억하며 그 시간들, 그 들이 나의 기억 속에 있을 것 같이 나도 그들의 기억 속에 있을 겁니다. 그들의 삶속에 ㅈ님이 기억되기를 다시 ㄱㄷ합니다

선봉에서 SOO 올림

최O렬 목사

(최O렬 목사님은 중국에서 조선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꿈나무장학회의 책임자입니다.)

친애하는 기윤실 회원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올립니다. 우리의 조국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 진통이 끝나면 평화와 화해의 날이 성큼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저희는 지난달에 가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일정은 왜○산교회와 함○옥 집사를 방문하는 일과 1874년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의 선교사인 존 로스와 맥킨타이어 등이 조선 선교를 위해 찾았던 고려문을 방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소학생글짓기시상식과 장학금 전달식이 있었고, 여름 끝자락에 물난리를 겪은 함경북도의 동포들에게 쌀과 의복 등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왜○산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왜○산교회는 요녕성에 있는 조선족교회인데 문화혁명 때에도 기도의 불을 끄지 않은 교회로서 마치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서머나교회 같습니다. 다만 근래에는 교인들이 줄어 예배당이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요즘 교회 주변에는 개발바람이 드세어서 교회도 이전해야하는 형편인데 교인이 없는 교회가 어떻게 교회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저희가 이 교회를 찾은 것은 이 교회에 신철이라는 노인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신 선생은 1924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중국을 전전하다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을 다닌 분입니다. 그의 어머니 방순애 여사는 일본 청산학원 출신으로 한국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의 부인인 홍은혜 권사와도 막역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신 선생은 1948년 한국 정부가 수립된 후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범석 장군으로부터 중국 동북의 정치상황을 수집 보고하라는 밀명을 받고 중국 국민당 국방부로부터 중좌에 임관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양 인근에 들어와 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신 선생은 인민해방군에게 붙잡혔는데 드라마틱하게도 자신을 붙잡은 인민해방군 166사단(조선인으로 구성된 일명 방호산부대로 알려져 있다)의 지휘관이 자신의 친동생 상철이었습니다. 동생은 기구한 운명을 탓하며 신 선생에게 전향을 요구하였으나 신 선생은 “내가 16살 되던 해에 서울 남대문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인데 어찌 공산당이 될 수 있겠느냐”며 전향을 거부하였습니다. 신 선생은 전범이 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1950년에 지방관제로 잠시 풀려났습니다. 이때는 항미원조전쟁(6.25전쟁)으로 전쟁 열기가 뜨겁던 시절인데 신 선생은 반전운동을 벌였습니다. 하여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부대를 따라 북한에 들어간 동생은 청천강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신 선생은 전범에 반혁명범의 죄를 덮어쓰고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종심에서 15년형을 받아 흑룡강성 오동하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감옥생활은 1979년까지 장장 32년이 이어졌습니다. 1967년에 홍위병에 의해 석방되었으나 바깥세상은 전범에다 반혁명범인 우파 지식인에 신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한 신 선생에게는 감옥 보다 더 무섭고 위험하였습니다. 다시 수감된 신 선생은 1979년에야 출옥하였는데 스물다섯의 청년이 장장 32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쉰여섯의 초로가 되어서야 자유를 되찾은 것입니다.

출옥한 신 선생은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다니며 가전제품을 수리하거나 교회를 찾아가 풍금과 피아노를 조율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심양 서탑교회 지인의 소개로 함문옥 집사를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신 선생 부부는 왜○산교회를 섬기며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를 주님이 주셨다며 기뻐하였습니다. 성경과 찬송가를 등사하다가 발각되어 어려움도 겪었고, 예배당 마당에 중국 오성홍기를 내어달라는 말을 거역하여 지방정부와 마찰도 있었지만 신 선생 부부에게 왜○산교회는 땅에서 누리는 천국과 같았습니다.

그런 신 선생이 2008년 6월 5일에 이 세상을 떠났고 미망인 함 집사만 홀로 남았습니다. 다행히 연변대학교의 류연산 교수가 신 선생을 여러 차례 찾아가 구술을 녹음하였고, 저 역시 2006년 여름에 연변에서 신 선생을 잠시 모신 적이 있습니다. 류 교수는 구술을 글로 정리하고 제가 감수하고 덧붙여서 지난해에 (여울목, 2015)의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혹시 기윤실 회원께서 이 책을 원하신다면 저의 이메일(navi2one@nate.com)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일 년에 한 두 차례 함 집사를 찾아가 위로하곤 하였습니다. 함 집사는 몸이 약하여 병원신세를 자주 지고 있는데 이번에 저희는 함 집사를 위한 성찬식을 베풀어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함 집사의 할아버지인 함병현은 미국 시카고에서 사탕공장을 하다가 국난이 기운 것을 알고 만주에 들어와 민족독립에 앞장서다 일제에 의해 순국하였고 아버지 함풍도는 영수로서 교인들을 이끌고 산에 들어가 초기기독교와 같은 공동체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함 집사는 두어해 전에 한국에 들어와 국가보훈처를 찾아가 남편 신 선생이 한국 정부의 명을 받고 중국에 들어온 자로서 이제는 한국 정부가 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였지만 정부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기윤실 회원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일이란 대가나 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믿기에 지금도 세상 구석구석에서 주님의 나라가 확장에 임하는 선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저희 역시도 그 대열에 바로 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가 저희의 가장 큰 힘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6년 11월 24일

최O열 드림

곽동원 선교사

주안에서 사랑하는 유용석 장로님과 LA기윤실 운영위원님들, 그리고 회원 여러분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그동안 건안 하셨는지요.

이곳 러시아의 변방 연해주는 요즈음 섭씨 -15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속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또 한해가 마지막 달력을 남겨 놓은 채 흘러가고 있습니다. 2016년도를 뒤돌아보면 올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감사의 제목들이 풍성한 한해였습니다.

올해 3월에 저희 부부의 연해주 2기 사역을 시작 하면서 시작된 “들꽃향 선교 쎈터” 1차 리모델링 작업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게 마무리되어 1층 2층 모두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장,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미 3차에 걸쳐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청년 모임과 수양회를 인도 하였습니다.

지난 9월엔 2017년도 계획인 차고와 관리인 숙소를 위한 기초 공사를 끝내었으며,2017년 단기선교 3팀과, 5월에는 이곳 상황에 최적화된 태양열 에너지 시설 설치를 위한 기술팀들이 방문할 예정이며, 미주 아버지 학교에서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연해주 아버지 학교 개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수확한 감자 (약 1.5ton)은 북한 노동자 숙소에 1월초에 기증할 예정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또 한 가지 감사드렸던 일은, 지난10월에 공연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찬양팀이 LA기윤실을 방문했던 일입니다. LA기윤실 장학생으로 구성된 7명의 찬양팀을 대표님과 운영위원 여러분들이 좋은 식당으로 초대해 주시고 격려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LA 기윤실 협력 교회인 나기영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산돌교회”에선 찬양집회를 위해 나기영 권사님과 온 교인들이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유니버샬 스튜디오와 LA 관광까지 인도해 주셔서 찬양팀 청년들 모두가 주안에서 넘치는 사랑을 경험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유용석 장로님과 함께 라구나 비치 “Las Brisas”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신 유대호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5년 동안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위해 계속해서 도와주신 LA 기윤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비닐하우스 지원, 청소년 장학금 지원,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난방 및 조경 작업 지원을 통해서 고려인들과 함께 사역하는 우리 부부에게 큰 힘이 되었으며 넘치는 사랑 받고 돌아간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찬양팀의 눈물의 간증을 통해 온 교인들이 먼 나라 미국의 같은 디아스포라 우리 동포의 사랑에 감사함을 확인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물어 가는 2016년 하나님 은혜 가운데 마무리 하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형통하시며, 늘 오가는 소식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하시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10월 미국에 방문중인

곽동원 선교사님과 고려인 학생들

2016년 11월 24일

연해주 아씨노브카 앵두골에서

곽동원&진희

최요섭 목사

사랑하는 LA 기윤실 회원 여러분들께,

태국, 미얀마, 그리고 라오스가 만나는 Golden Triangle지역에 관문과도 같은 이곳 치앙라이에서 주님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해주시고 후원하여 주신 덕분에 강력한 불교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음의 사역이 날마다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장기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태국의 행정 및 법적 제도에 맞추어 사역 단체를 등록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곳에서는 이러한 단체를 파운데이션(Foundation)으로 통칭하며, 이의 설립을 위하여 행정적인 준비사항과 단체 설립 기초에 필요한 재정이 필요합니다. 단체 등록을 통해, 저희가 섬기는 태국 지역사회에 합법적인 의무를 다함과 동시에, 사역자들과 팀원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활동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한 올해 초부터 시작된 북부 산간 부족 마을 어린이 대상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 꾸준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와 MOU를 맺고 협력 관계에 있는 Farm Foundation의 산간부족 어린이 대상의 초중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저희 GTEC(Golden Triangle Education Center)이 자리 잡은 반팜 마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짧으나마 이곳에서 진행하였던 교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저희가 속한 이곳 반팜 마을에도 교육을 통한 섬김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 초 부터 이곳에 작은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할 학교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서 이곳 반팜 마을에 작은 학교를 시작할 수 있는 집을 구하여야 하고, 학교 운영을 위한 준비를 위해 적지 않은 제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교육을 통한 복음화를 위한 또 다른 통로를 모색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팀원 전원이 태국에서의 사역과 섬김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태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 하고 있습니다. 태국어는 난이도가 높고 언어체계와 문자가 독특하여 학습에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저희가 섬기는 태국의 문화와 사회를 배워가고, 사람들과의 진정한 소통과 나눔을 위해 현지어를 익히는 것이 필수적인 만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태국어 학습에 임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원들이 선교의 첫 번째 필수 관문이 언어를 잘 배우도록 기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더하여 제 아내 건강이 좋지 못하여 여러 가지 치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제 아내가 건강을 되찾기를 위하여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2016-12-01

태국 치앙라이에서 최요섭선교사

채상군 목사

할렐루야!

임장로님과 유장로님에게: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들을 감당하시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앞에서 믿음의 길을 가고 계시는 장로님들의 모습은 뒤에서 오는 저희에게 너무 소중한 믿음의 본이 되여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저희와 교회 모두 임장로님과 유장로님께 늘 아낌없이 기도해 주심으로 인해 주님의 은혜가운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말에 갑작스럽게 건물 주인이 세를 올리고 계약기간도 다 되어 사라전도사가 섬기던 교회가 제가 섬기는 교회 건물로 이사 오게 되였습니다. 저희가 생각지도 계획지도 못한 일이지만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일임을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라전도사가 섬기던 한족교회 성도들과 제가 섬기던 교회 한족부를 합치고 그 교회에 있던 조선족을 제가 섬기는 교회 조선족과 합쳐 10월초부터 사라전도사가 전문 조선족을 맡고 제가 전문 한족들을 맡아 섬기기로 했습니다. 조선족은 교회 1층에서 수 금(오후 7:00-8:20) 일(오전 11:00-12:20) 예배를 드리고 한족은 화 목(오후 7:00-8:20) 일(오전 9:00-10:30) 지하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이면서 서로 독립이 되어 두 달 넘게 진행 해오면서 보니 교회성장에는 더욱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저희 계획함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아버지께서 강권적으로 진행 하신 일인 것 같습니다. 장로님들의 변함없으신 기도가 있었기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벌써 또 올해의 마지막달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전도행사로 12월24일 저녁에 크리스마스 이웃 초대잔치를 성도들과 함께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목적입니다. 하나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세상 사는데 바빠진 우리가 나를 위해 오신 주님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오실 주님 소망하면서 믿음을 지켜 살아가는 삶을 회복 하고 다짐하며 그리고 두 번째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가족과 이웃들을 아버지께로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회복시키시고 구원받을 영혼들을 교회에 더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새로운 한해에는 외부 선교를 시작 하려고 합니다. 중국 내륙에 있는 미전도 종족이나(250여개 종족이 있음) 복음이 편벽한곳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인도함이 필요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현제 10월 중순부터 한 부부를 저희집에 같이 데리고 살면서 양육하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은혜 받고 또 헌신의 부르심이 있어 오래전부터 기도하며 고민해오던 끝에 두 사람 모두 사직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자 양육과 훈련을 시작 했습니다. 계기가 되면 신학교를 보낼 생각입니다. 잘 양육할 수 있도록 기도 해주세요.

아버지께서 이렇게 부족한 저희 부부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 또한 늘 묵묵히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도와주시는 장로님들이 계셔서 가능 합니다.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2016년 12월 07일

채상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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