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기윤실 문서자료 – 그들은 왜 박사였을까 / 김기대

김기대 목사 / 평화의교회

곧 있으면 성탄절이다. 각 교회 강단에서는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에 대해 많은 설교들이 행해질 것이다. 성탄절 설교에서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동방박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한다. 성서 기자의 창작이라는 말도 있고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찾아온 점성술사라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는 겸애 사상을 강조했던 묵가 소속의 학자들이 멀리 중국으로부터 왔다는 주장도 있다.

어떠한 경우가 되었건 간에 누추한 곳에서 이루어진 아기 예수의 탄생과 화려한 예물을 들고 온 동방박사라는 양 극단의 대칭 구조는 성탄절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아무런 지혜도 없는 아기와 모든 지혜를 소유한 박사, 마구간에 어울리지 않는 예물이 동방박사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동방방사는 왜 그들의 고향을 떠났을까. 단순히 신비한 별을 따라온 사람들일까. 그들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먼 여행을 시작했고 그 여행이 끝에서 한 누추한 아기를 발견한다.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비교가 되지 않을 문명을 가진 페르시아(중국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출신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꿔왔을 것이다. 바빌론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한 힘과 문명을 가진 페르시아가 망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은 욕구로 인해 별을 따라왔을 때 그곳에서 놀라운 반전을 발견한 것이다. 문명의 실패를 대신할 대안은 더 강한 문명이 아니라 약함, 즉 힘의 결여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문명의 상징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 앞에 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것들은 예물이 아니라 버림이다.

지성인이란(신앙인이어도 좋다) 지금 사는 사회의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내밀한 면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한다. 세상의 겉은 화려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속살이 곪아가고 있음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구원이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추한 자들과 함께하는 데 있음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 말 성서는 그들에게 박사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나 보다. 진짜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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