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기윤실 공지사항 – LA기윤실 9월 북방편지

Sㅇㅇ 위원

연길에 온 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바뀌는 계절을 지나며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선봉에 있는 우리 빵 공장에 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 하는 사람, 낯익은 미소를 나누는 사람도 하나 둘 늘어 이제 빵공장은 어느덧 친근한 곳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빵 공장 직원 경희는 학교를 막 졸업하고 처음으로 우리 빵 공장에 취직을 한 19살 아가씨입니다.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세 식구가 같이 산다고 합니다. 웃음이 별로 없는 경희는 나를 보면 수줍은 모습으로 미소 짓습니다. 처음 경희가 빵공장에서 일하게 된 날, 이전에 일하던 은별이가 안 보이기에 의아해 했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경희에게도 무척 정이 갔습니다. 모든 일에 서툴기만 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빠르게 일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합니다. 경희에게 이 첫 직장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 해 봅니다. 이 아이에게 심어 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제 자신에게 물어 보며 희망을 품고 씨앗을 뿌립니다.

빵 공장에서 만들어진 빵들은 아침 일찍 선봉 탁아소 물자공급소에서 온 트럭에 실려져 40여 곳의 탁아소와 유치원에 배달됩니다. 이렇게 선봉 구석구석에 공급되는 우리 빵들이 아이들에게 기쁨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9월 LA기윤실 방문 시에, 우리 빵이 가는 선봉 시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부포 탁아소와 유치원에 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은 어느 곳이나 다 똑같습니다. 곱고 깨끗한 옷을 입지 않아도, 깨끗이 씻긴 얼굴이 아니더라도 예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이번 겨울에는 어떻게 춥지 않게 지낼 수 있을까요. 작년 겨울에 입던 옷, 신발들은 작아졌겠지요. 모든 것이 부족 한 이곳에는 방안도 따뜻하지 않다고 하는데, 정말 도움에 손길이 필요 한 곳에 우리의 사랑과 정성이 가기를 오늘도 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해 주시는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루어 진 것이기에 우리는 모두 동역자입니다.

이제 이곳은 추운 겨울을 앞두고 있는데,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8월 말에 태풍 “고니”가 라선 시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수해 직후인 8월 24일,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국경에 도착했을 때, 라선으로 가는 북한 쪽의 국경 문이 닫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작년 같이, 비로 인해 산사태가 나서 도로 몇 군데가 막힌 줄 알고 다음 주 방문을 기약하며 연길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들려왔습니다. 홍수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산 밑에 있던 마을 하나는 완전히 물에 떠내려갔고, 선봉에 새로 만들어 놓은 다리는 산에서 뿌리째 뽑혀 내려온 큰 나무로 인해 부서졌다는 것을 나중에 선봉에 들어가서 들었습니다. 우리 빵 공장과 공사를 시작한 어린이 병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두 주 후인 9월 7일, 빵공장으로 향했는데 늘 사용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파손되어 먼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국경에서 50분정도면 갈 수 있는 선봉을 1시간 30분 넘게 두만강을 따라 만든 비포장도로로 가야했습니다. 도로는 곳곳마다 파손됐고 다리들은 거의 다 부서져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의 산사태로 인해 길이 막혀 있고 무너진 골짜기 곳곳에 쌓인 큰 돌과 흙더미를 보았습니다. 이전에는 푸르른 산과 맑은 시냇물이 있던 곳이 폐허로 변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큰 물이 휩쓸고 간 마을들은 몇몇 집만이 남아 있었고 많은 곳이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농작물을 키우던 밭은 끝이 없이 보이는 흙과 모래밭으로 변해 있었고, 물이 산에서 옮겨다 놓은 나무들이 이제는 죽은 색깔로 변하여 곳곳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봉 시내에 도착하자 무너진 아파트와 건물들을 보며 그저 탄식만 나왔습니다. 이번 홍수로 피해가 가장 많은 곳은, 저지대에 위치한 우리 빵 공장과 선봉병원 일대입니다. 빵 공장과 식품공장 1층도 모두 물에 잠겼었습니다. 물이 빠진 후 잔뜩 쌓였던 흙을 깨끗이 청소하고 빵 기계의 부속품을 다 뜯어서 말렸습니다. 다시 조립을 해서 작동을 해보니 천만다행으로 빵 기계가 문제없이 갔습니다. 이렇게 기적과 같은 일을 보며 불행 중에도 감사가 나왔습니다.

빵공장에서 만난 식품공장 지배인은 까맣게 그을리고 조금은 야위어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빵공장 미옥 동지는 빵공장에 물이 찰 때, 아래 쪽에 있던 설탕가루, 우유가루, 그리고 중요한 작은 물건들을 기계 위에 높이 올려놓아 재료를 모두 보존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긴박한 상황을 상상해 보니, 그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봉 병원 역시 건물의 문과 유리들이 거의 다 깨어졌고 몇 가지 기계들이 망가져 피해가 꽤 있습니다. 선봉 병원이 낮은 지역에 있어 물이 차있을 때, 많은 것들이 떠내려가다 선봉 병원에 걸쳐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정말 물들이 실어다 놓은 많은 쓰레기들이 곳곳에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홍수로 선봉 일대의 2,000세대가 집을 잃었습니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겨울이 되기 전에 살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원 되고 있습니다. 선봉과 나진 일대에서는 공장의 가동을 잠시 중단하고 주민들이 피해 보수 작업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진 선봉 지역에서 일하는 여러 NGO 단체들이 힘을 합쳐 북한동포를 돕고 있습니다. 우리를 안내하는 지도원이 여러 단체들이 도와주어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 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어둠 후에 빛은 더 밝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큰 피해를 입은 북한동포와 함께 하는 마음과 손길이 모여질 때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리라 믿습니다. LA기윤실 회원 여러분들도 슬픔과 아픔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Sㅇㅇ 위원은 LA기윤실이 북한의 선봉에 세운 사랑의 빵 공장 책임자로 파송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최광렬 목사

LA기윤실 회원 여러분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올립니다. 태환장학회는 지금부터 22년 전인 1993년 최성원 장로님이 연변려명농민대학에 둥지를 틀며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편벽한 곳에서 거친 삶을 숨 가쁘게 사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일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 여겨 시작한 일입니다. 이 뜻은 2004년에 클리브랜드의 정만석 장로님을 거쳐 LA기윤실의 사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민족공동체를 귀히 여기시는 LA기윤실 회원 여러분이 계셔서 한 해 한 해 소중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올 봄부터 장학회가 이곳 학생들에게 더 정겹게 다가가가 위하여 그 이름을 ‘꿈나무장학회’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올해의 장학금 전달식은 지난해처럼 직접 학교를 찾아가 전달하였습니다. 연길, 룡정, 화룡, 도문, 왕청 등 연변일대는 물론 멀리는 요녕성과 흑룡강성까지 다녀왔습니다. 때마침 중국을 방문하신 LA기윤실의 허성규 대표님, 박문규 학장님, 이홍길 장로님, 그리고 서민숙 선생님이 현지 두 학교를 방문하여 직접 장학금을 전달하여 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신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지 목회자 자녀들의 자녀를 초청하여 만찬을 나누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주님 나라 사업을 하느라 가정에 소홀하기 십상인 목회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에게 부모의 사역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하고 부모보다 더 뛰어난 주님나라 일꾼이 되어달라는 당부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만나 위로하고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먼 미국 땅에서 태평양을 건너오신 LA기윤실 손님들을 대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모의 분주한 목회사역을 이해하고 자신도 부모와 같은 주님의 길을 오롯이 걷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 올해 장학금 전달이 갖는 큰 의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국에서 우리 민족 교육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합니다. 집거(集居)지구인 연변은 그래도 교육 여건이 나은 편이지만 중국인 사이에 외톨이처럼 존재하는 산거(散居)지구의 동포들이 겪는 교육현실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나마 좋다고 여겨지는 연변지역의 민족 문화 진흥과 교육 여건 개선도 ‘동북공정(東北公定)’이라는 왜곡된 역사인식과 맞물려있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형국입니다. 제 나라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의 1/10이 해외에 거주하는 독특한 민족분포 구조를 가진 우리 민족으로서는 민족 현안인 통일과 평화, 그리고 복음이라는 관점에서 해외동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중국의 우리 민족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이번에 방문한 한 학교는 지난해에 비해서 월등하게 학생 수가 줄어있었습니다. 준비해온 선물을 전교생에게 나누어 주고 교장선생님에게 “이렇게 10년을 더 올테니 그때까지 지켜주십시오” 부탁을 하였지만 교장선생님은 슬며시 웃을 뿐 즉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희망 없는 현실에서 절망하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땅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이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요구받는 질문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맥 놓고 앉아있을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로 ‘선지자적 비관주의’가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왕복 10시간을 달려 한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소학교 2학년 학생 가운데 희연이가 있습니다. 마침 제 옆자리에 앉아있어서 관심을 갖고 아이의 조그만 몸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안는 순간 제가 움찔해지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등에 커다란 이물질이 느껴진 것입니다. 아, 희연이는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천형과도 같은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고 있는 희연이는 14살, 중학교에 갈 나이지만 이런 저런 형편으로 지금은 소학교 2학년입니다. 치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살벌한 세상에 이 여린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LA기윤실 회원여러분! 올해에 어김없이 이 땅에서 꿈과 용기를 갖도록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여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먼 길을 친히 찾아와 이 땅의 아이들에게 격려하여 주신 LA기윤실 임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디아스포라의 삶이 어딘들 편안하겠습니까만 더 열악한 형편의 동포에게 베풀어주시는 그 귀한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G2로 부상한 중국이지만 힘과 돈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온기어린 사랑과 따스한 눈길이 필요한 곳이 이곳에는 너무 많습니다. 이번 장학금 전달을 통하여 꿈나무장학회는 168명의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준비해주신 꿈과 용기를 전달하였고, 12월 무렵에 120여명의 학생들에게 사랑을 전할 예정입니다. 따뜻한 사랑 나누어주신 것을 다시 감사드리며 주님의 선하신 이끄심이 기윤실을 통해 교민사회에 드러나기를 멀리서나마 기도합니다. 이 귀한 일에 동역하는 모든 회원님께도 주님의 동행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최광렬 목사님은 중국에서 조선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꿈나무장학회의 책임자입니다.)

곽동원 선교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는 지난 5월에서 7월까지 러시아 연해주 꽃재배 농가들이 겨우내 정성들여 재배한 꽃들이 블라디보스톡 일대 꽃시장에 출하되어 판매되는 현장을 돌아보고, 2016년도 재배용 씨앗을 주문 받고 돌아왔습니다. 지원농가의 증가로 판매 경쟁이 예년에 비해 치열했지만 블라디보스톡 인근 의 여섯 곳의 기존 재래시장과 올해 처음으로 개장된 한곳의 꽃 전문 시장에서 우리 지원 고려인 농가들은 성공적으로 판매를 완료 하였습니다. 작년에 비해 수익도 30%정도 증대 하였고 새로이 꽃재배를 원하는 젊은 부부 세 가정을 선정하여 올해 말 부터 지원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먼저 꽃 재배에 참가한 농가들이 안정권에 접어들고, 뒤늦게 꽃 재배로 전환하는 가정들이 늘어남에 따라 몇 년 전부터 우려해 왔던 우리 지원 농가끼리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계획하고 있었던, 먼저 시작하여 안정된 원예 선발주자들에게 NURSERY개념의 조경수 재배로 유도해야할 때가 온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때마침 저희들을 기도와 물질로 지원하시던 지인들의 도움으로, 조경수 재배와 교회가 없는 외딴 지역에 모여 사는 재배자들에게 영적 성장을 위한 전진 기지로 사용할 공간 구입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구입을 추진 중인 건물은 저희와 함께 딸기와 유리온실 재배를 위해 협력하다가 2013년 겨울에 심장마비로 소천한 알렉산더 김의 2에이커의 농지와 새로 개축한 현대식 주택입니다. 주님의 뜻으로 이 농장이 구입된다면 한걸음 나아간 영과 육을 살리는 전도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 입니다.

7년동안 동토를 헤매이는 우리의 핏줄 고려인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 하다가 6년동안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능력의 한계안에서 고려인에게 주님을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저희 부부가 미국 이민생활 36년 종사해왔던 원예 기술을 응용하여 사역해 왔습니다. 누구에게 어느 단체에게 대놓고 후원 요청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미국에서 일하며 신앙생활 하듯, 고려인들과 꽃 키우는 일은 미국에서 먹고 살던 생업의 연장이였으며, 청년들의 방황에 함께 울며 기도하는 것은 미국에서 하던 청년부 섬기는 일이며, 고단한 삶에 지친 노인들과 교제하는 것은 미국 교회에서의 구역 예배였습니다. 병마와 싸우는 이들과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일은 구역장의 심방 사역이였습니다.

선교사라고 불리우는 것보다 형님으로, ‘아주마이’로 불리우는 것이 더 정다운 우리 부부의 미숙한 선교사역을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과, 고려인 교회에 큰 힘이 되어 주신 LA기윤실 유용석 장로님과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곽동원 선교사님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의 화훼재배를 가르치며 목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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