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석 사무국장 /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

몇 해전에 나온 ‘완득이’라는 영화에서 동주라는 인물의 부자 아버지가 이런 내용의 대사를 한다.

“밖에서는 얼마든지 불쌍한 사람들을 줄 수 있지만, 내 공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절대로 안돼. 그들을 도와주는 순간 이 공장도 내가 가진 것도 모두 망하게 돼”. 하필 교회 장로로 나오는 이 인물의 인생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대사다. 돈을 버는 일과 선행 혹은 윤리는 별개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섞이는 순간 그의 세상은 혼란과 파멸이 올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다.

오늘날 상황을 보면 이러한 종류의 믿음이 기독교 신앙과 어지럽게 섞여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삶을 지탱하는 현실적인 수단과 방법은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신앙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 현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이중잣대를 잘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고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아가 이제는 오히려 현실의 삶을 유지하는 방법과 수단을 통해 개인의 삶과 교회를 운영하려는 현상까지도 나타난다. 문제는 이러한 신앙은 더는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단지 팍팍한 현실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죄책감을 달래기 위한 영적인 진정제에 더 가깝다.

기독교 신앙은 현실과 분리되어 각 영역을 적당히 오가며 두 가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두움 가득한 현실의 땅위에 초월적인 하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을 믿고 그 나라에서 사는 하나의 삶이어야 한다.

그것은 현실 속 삶의 방법이 하늘나라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나라의 삶의 방식이 이 현실을 침노하고 통치하는 것이다. 이 현실이 기독교인의 삶과 윤리의 터 인것이다. 하늘나라는 스스로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나라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의 공동체가 될 뿐만 아니라 분리되었던 인간들이 하나의 존재로, 공동체로 회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개인의 문제일 수만 없으며, 공공성과 다양성 위에 실천되고 확장되어 가야 한다. 기독교 신앙 안에 궁극적으로 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한 분의 생명을 나누는 가족으로서 함께 존재할 뿐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 없이 기독교 신앙과 윤리는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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