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석 사무국장 /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

최근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지하철 슬라이딩 도어를 수리하던 꽃다운 한 생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청년의 작업가방 속에는 아직 뜯지도 못한 컵라면과 공구 더미에 뒤엉긴 나무젓가락, 숟가락이 발견되었다.

청년은 제대로 된 끼니는커녕 컵라면 한 그릇 먹을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작업 스케줄에 치이다 마침내 회사의 생산성과 이윤 앞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청년의 생명과 안전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청년의 고된 노동 또한 기업의 생산성과 재무제표상의 숫자로써 의미가 있을 뿐, 인간의 존엄성이나 노동의 고귀함 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이런 노동환경을 만들어내는 기업과 그것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 가운데 개인은 더는 하나님의 신성함을 담고 있는 고귀한 존재가 아닌, 사용가치가 떨어지면 대체되고 버려 져야할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조직과 사회의 야만성,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끊임없이 개인을 제물 삼아 전진하는 이 구조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근래 교계에서 터져나오는 노동분쟁의 소식이 이 비극적인 사건과 묘한 변주를 이루고 있다. 분쟁의 중심에는 결국 조직을 위해 야기되는 개인의 희생과 그러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한 분노가 있다.

물론 노동문제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의 기본권에 맞서는 조직의 존립과 성장의 논리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식의 이분법적 대립이 과연 타당한지 질문해야 한다.

노동을 통한 개인의 기본권은 생존과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로 타협이 불가한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논리와 가치도 동일하게 타협 불가능한 것일까. 구성원의 존립을 위협하는 조직의 논리는 기독교적 가치보다는 무한 경쟁의 폭주 기관차와 같은 신자유주의와 훨씬 더 닮아있다.

교회는 맘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운영돼야 한다. 세상 모든 조직이 현대판 맘몬인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그 구성원과 노동자의 희생 위에 세워지고 있지만 교회만큼은 그 어떤 조직보다도 그들의 권익과 삶을 지켜냄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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