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규 학장 LA기윤실 실행위원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 대학정치학

들어가는 말

북한 사회가 놀라운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을 비롯하여 여러 통로를 통하여 알려지고 있다반면에 북한은 깜짝 놀랄만한 정도의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북한의 변화성과 안정성 중 어느 쪽을 강조 하느냐에 따라 북한을 보는 시각과 접근 방법도 양분화 되어 있다이 글은 북한이 어떤 면에서 변화를 하고 있고어느 면에서 변화하지 않는가를 분석해 보려는 목적에서 쓰여 졌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은 현상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지만본질은 변하지 않은 면이 많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상이 본질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점점 증가하는 것도 사실임을 기억해야 한다.

불변하는 이데올로기와 변화하는 정책

북한의 이데올로기는 계급 투쟁론주체사상김일성 가계의 신격화라고 말할 수 있고이 점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사회의 기반으로 보아야 한다.

A. 계급 투쟁론

공산주의 이론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즉 역사 창조의 단위는 개인도 국가도 아닌 계급이다북한은 스스로 계급이 없는 사회노동자들의 나라라고 믿고 있다그리고 북한은 남한의 피압박 계급과 연대하여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는다그들의 통일 전략은 1950년에는 전면전을 통한 통일이었다가 평화 통일론으로 전환되었고, 1960년대는 게릴라 전략을 시도하기도 했고현재는 남한과의 대화를 통한 연방제를 먼저 이루고 남한의 피압박 민족과 더불어 남조선 해방 일을 이루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전략은 바뀌었지만 계급투쟁을 위한 해방통일이라는 기본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남한의 지배계급은 미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이다그래서 북한의 일차적인 모순은 미국 지배계급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하고 북한은 그 주적과 협상상대를 미국이라고 이해한다그들은 남한을 휴전협상에 서명조차도 하지 못한 주권 없는 노예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고 남북한의 경제력의 차이가 극심하기에 단기간에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 한다그래서 우선 핵 국가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으면서 경제개발을 먼저 이루겠다는 전략으로 나아간다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미국 등 주변국과 협상을 통해 국교를 수립하여 긴장완화를 이루고 경제개발에 도움을 청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정책은 유연성을 가지고 변하고 있다.

B. 주체사상

김일성 주체사상은 중소 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김일성 정권이 자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에 의하여 나온 이데올로기이다그것은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절대 절명의 목표를 가진 사상이지만 러시아나 중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중요한 정책 방향이다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소련 체제의 몰락과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중국에 경제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중국 의존성의 탈피야말로 김일성 주체사상에 입각한 북한의 정책적 목표라 할 수 있다김정일도 유훈을 통해 중국을 경계할 것을 부탁하였다북한의 핵무장과 친중파 정치인 장성택의 숙청으로 인해 중국의 시진핑 정권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일본과의 독자적인 화해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변하지 않는 주체의 이데올로기를 구체적 상황에서 실천하며 정책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중국일본미국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의 줄타기 정책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주체라는 틀 속에서 정책의 유연성은 늘 확보되어 있다.

C. 김일성 신격화사회적 정치적 생명체론

김일성 주체 사상의 중심축이 중소로부터 주체의 확립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의 축은 김일성의 신격화와 수령 유일 체제이다정치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인데 그 유기체의 뇌수의 역할을 김일성 수령이 담당해야 하고 그 생명체의 모든 지체는 수령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그리고 수령의 지위는 백두혈통을 통해 승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정일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를 통해서 현실적으로 확인되었다금년 초에 있었던 장성택 숙청도 결국 수령유일체제에 도전하는 어떠한 세력이나 인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데올로기의 견고함을 만 천하에 선언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지금 김정은이 주장하는 핵무기와 경제개발의 병진정책은 상당히 오랫동안 도전을 받지 않고 지속되리라고 전망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유연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변하는 정치군사사상과 변화하는 경제와 사회

북한은 조선노동당에 의하여 통치되는 전체주의 국가이다조선노동당은 청년동맹여성동맹직업동맹 등의 외곽 동원 조직을 통해 그들의 이데올로기인 김일성주체사상을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주입시켜 김일성 신격화를 유지하였다그것을 바탕으로 김일성 가계의 세습에 의한 통치가 가능한 유일 체제를 확립하였고 군대에 힘을 실어 주어 병영국가를 수립하였다이러한 북한의 정치적사상적 군사적 기본 틀은 지난 50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을 전후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체제의 몰락과 더불어 북한 경제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생필품의 배급을 줄 수 없어 많은 북한 주민들이 죽어갔던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이런 와중에서 북한 경제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는 아주 컸다여기에서는 1990년 이후 북한이 겪었던 경제적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A. 변화의 필요

북한은 1950년대에 이미 공업의 100%가 국유화되었고 농업의 95%가 집단 농장을 통해 생산되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공산주의 경제를 이루었는데 1960년대부터 공산주의 경제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 가장 큰 이유는 공산주의 경제가 가져다주는 생산성의 저하였다다시 말해 개인이 생산에 공헌한 강도와 상관없이 물자가 배급을 통해 분배되기 때문에 근로 의욕이 저하되고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저하되었다그리고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 공급과 수요가 정책 입안자의 계획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에 의한 정책이나 경제논리가 아닌 조직의 논리혹은 정치적 논리로 결정되는 정책이 허다했다북한 정권은 이런 문제를 만날 때 마다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통한 근로 동기의 부여나 시장제도의 도입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당 간부나 노동자들에게 사상 교육을 강화함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공산권의 몰락으로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에 있던 무역 파트너를 잃어버렸고 원자재의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산업이 마비되었고 국가 경제 전체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러 더 이상 옛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결국 김정일은 박봉주 총리를 통해 2002년 7월 1일 이른바 7.1. 경제 조치를 발표하게 된다.

B. 7.1 경제조치

2002년 7월 1일 발표된 이 경제 조치의 내용은 첫째공장의 작업 조를 세분화 시켜 작은 규모로 운영케 하여 생산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공장의 운영을 부분적으로 자율화 시킨 것이다생산의 일정량(30%)은 지배인 책임으로 시장에서 판매케 하고 그 중 일부(20%)는 종업원이 사용케 하며 생산량에 따라 임금의 차등화를 두는 일종의 인센티브 시스템의 도입하였다둘째집단 농장 외에 개인이나 가족을 단위로 해 경작할 수 있는 텃밭을 증가시켜(50평에서 400평으로농업의 생산력을 향상시켰다셋째종합시장을 설립해 과거에 장마당이라고 불리던 비공식적 시장을 합법화공식화 시켜 곡물까지 종합시장에서 유통하게 하였다이렇게 되자 평양에만 종합시장이 40개가 생겼고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종합 시장이 나타나 북한에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C. 시장경제의 영향

시장의 허용과 더불어 개인들이 시장에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였다가장 먼저 국영상점에 개인이 자본을 투입하여 중국에서 상품을 들여오거나 상품을 조달하여 일반인에게 판매 수입의 일부를 국가에 납부하고 종업원에게 임금을 주고 나머지는 개인의 이윤으로 챙기는 방법이 도입되었다그리고 아예 기관과 기업소의 명의를 빌려 상점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자도 있었다이러한 형태는 상점뿐만 아니라 식당 심지어는 가라오케당구장 같은 유흥업소의 출연을 가져오기까지 했다.

이렇게 시장이 활성화 되자 기업들은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이들은 시장판매를 위한 상품생산을 유인하기도 했다소상품 생산자(가내공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적인 품목의 생산에 집중하게 되었고 도매상과 소매상의 분업이 나타났고 제한적이지만 사채를 빌려주는 초기 금융자본가가 나타나기까지 하였다이러한 신흥 상업자본가 혹은 금융 자본가들을 돈주라고 불렀다.

많은 공업기업소집단논장 근무자들이 생계를 위해 직장을 이탈하여 비공식 분야에서 종사하였다이들은 고철수집수산물 채취 등 수출 품목을 채집하여 수출상에게 넘기거나 국경지역에나 내륙지방에 상업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스스로 생필품들을 가내에서 생산해 시장에서 판매하곤 하였다다시 말해 사회주의 내에서 단 기간에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D. 시장경제의 부작용

시장경제의 부작용은 컸고 북한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사회주의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로 보여 졌다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본가 계층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특히 외화벌이와 관계되는 돈주들은 어마 어마한 돈을 벌었다그러나 당 간부군 간부는 돈주로부터 상납을 받을지언정 직접 외화벌이에 뛰어 들지는 않았다권력층이 새로 등장하는 돈주를 장악하였다북한의 자본가들은 국가를 끼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 했다다시 말해 국가 의존적 자본가가라는 것이 북한 자본가들의 특성이었다그래도 자본가의 등장은 사회주의 체제에는 낮설었고 자본가들은 사회주의 보수론자 들에게는 용납되지 않은 착취자로 이해되곤 했다.

둘째로상업과 수산업에 있어서 자본가고용원의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노동시장이 또 하나의 시장을 이루었다이제 국가가 모든 일자리를 제공하던 체제는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시장과 자본가에 의한 고용의 증가로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은 감소되었고 국가기업은 노동력의 확보에 문제가 생겼다.

세 번째로국제품이 범람하고 빈부 격차가 일어났으며 심각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마지막으로 상업과 자본 시장에서 근무하는 자들은 생활 총화 등에 불출석하고 그 대신 간부들의 부패를 이용하여 돈을 주고 총화에 빠지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이렇게 되니 북한 사회의 근간인 동원조직과 사상교육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였다.

E. 시장 경제의 통제와 화폐개혁의 실패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하여 북한의 보수주의 세력은 시장의 통제를 강력히 주장하여 2006년부터 여성은 40세가 되어야만 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하여 미혼 여성을 본래의 국영기업이나 집단농장으로 돌아가게 했다또한 경제 개방론자인 박봉주 총리의 직무를 정지 시키고 2007년에는 박봉주를 총리 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2009년에 100대 1의 화폐개혁을 실시했는데 일 세대당 구화폐 10만원만 교환해 준다고 발표를 했다회폐 개혁의 목적은 돈주들의 사금고에 있는 돈을 찾아내어 국가재정을 확충하고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며 자본가보다는 근로자들을 우대해 사회주의의 기강을 잡겠다는 것이었다동시에 국가는 시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화폐개혁은 대 실패로 끝났다시장이 폐쇄되자 생필품을 구할 수 없게 되어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여 곡물가는 30배가 뛰었다인민들의 북한 화폐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중국 위안화를 선호하는 풍조가 나타났고결국 당국은 화폐개혁에 대해 인민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책임자인 박남기 노동당 재정부장은 총살형을 당하였다.

결국 2010년부터 시장은 다시 열렸으며 마침내 2012년 새로운 집권자 김정은이 박봉주를 소환해 총리에 임명하고 인센티브 정책과 시장경제를 본격화 시켰다현재 북한 경제는 70퍼센트 이상 시장의 교환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아직 생산수단의 변화는 이루어 지지 않았으나 교환 수단의 변화는 나타났고시장 경제를 향한 전진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이 확인되었다.

F. 시장 경제의 사회적 영향

시장 경제가 가져다 준 사회적 영향은 컸다우선 국가는 물자 공급에 있어서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였다아직도 신흥 자본가들은 국가 의존적일 수밖에 없지만그럼에도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재화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 인민들에게 경이로운 일이었다이제 국가 기관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게 되었다특히 중국을 다녀온 인사들을 통해 그리고 남한 비디오를 통해 북한 밖세계의 풍요가 전해지자 북한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회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렇게 되자 총화교육 등의 이데올로기적 호소력도 약해졌고 그만큼 국가의 통제력도 예전같이 않게 되었다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에 사회화된 사람들은 북한 정권의 효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정통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졌다북한 젊은 세대들의 의식이 김정은 정권이 원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은 탈북 청년들에 대한 조사로서 증명되고 있다이런 사회적 움직임에 대해 김정은 정권은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지만 그 한계는 점점 커질 것이다.

변하지 않는 장기적 국가 목표와 변화하는 단기적 국가 목표

북한의 장기적 목표가 남한을 미국과 자본주의로 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말하였다그러나 세계는 자본주의 질서가 지배하고 있고 미국 패권주의가 아직 몰락하지 않았으며남한에 대해서도 북한은 경제력이 많이 뒤지는 상황이다그래서 북한은 남조선 해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시기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김정일도 그의 유훈을 통해 통일은 꼭 달성하되 김정은의 시대에 안 되면 다음 시대에라도 꼭 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을 보면 남조선 해방은 장기적으로 달성할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북한의 단기적인 국가 목표는 첫째미국 등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안전을 지켜 내 체제안정을 이루는 것이고 둘째는 뒤쳐져 있는 경제를 회복시키고 빠른 경제 개발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김정은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보충되고 병행되어야 할 국가 목표로 이해하고 있다경제 발전을 위해 안보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고 또 계속적인 군사력의 증강을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로 이 목표를 위해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확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그래서 북한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안전망을 구축하였다고 믿고 있다역설적으로 한반도의 정세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핵무기가 그들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는 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 전 당시 인민군 총사령관 이었던 김격식이 정전 60주년 기념식에서 평화란 곧 전쟁준비의 완료 라고 발언한 진의라고 이해하여야 한다한반도에서 미국의 힘은 북한의 군사력에 의해서만 견제될 수 있고 이제 북한은 핵무기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했기에 미국이 침략하지 못하리라는 국토보호의 자신감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무기를 바탕으로 미국과 직접 대화 할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그것을 위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과거의 제안을 더욱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법적으로 한반도가 휴전 중이라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며 이것은 미군의 한반도에 주둔하는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이다이미 북한은 유엔에 가입한 독립 국가이고 지난 60년간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없었는데 이제야 말로 옛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의 종료와 평화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주장한다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만미국과 평화적인 기반에서 국교를 맺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미 북한은 2013한반도에서 휴전 협정은 무효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진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미국과 북한 사이의 평화협정이 맺어진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평화협정은 목표를 향한 단계이지 장기적 목표 자체는 아니다미국의 원조를 얻어내고 미군 철수를 주장할 법적 기반이자 명분이지 힘의 대결에 있어서 결정적 영향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협정은 종이 위의 약속일뿐이다.

설사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한다 하더라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군대의 이동 능력이 고도로 발달되어있고미군은 한반도 외에도 북한을 공격하는데 사용될 군사 기지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의 철수가 북한의 안전을 보호하리라는 생각을 북한이 가질리는 없다한마디로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인 것이다.

미국 오바마 정권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가함으로 북한과의 긴장을 유지하자는 정책이다그러나 북한이 외국의 압력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확률은 아주 적다는 것이 이미 김정일의 유훈에서 확인되었다그리고 인내하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미국은 언젠가는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북한이 핵국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러는 동안 발 빠르게 북한과 긴장완화를 한 중국러시아 그리고 일본마저 경제적 실리를 챙기며 동북아의 정세를 이끌어 갈 것이다.

북한이 핵 국가가 됨으로 남한의 입지는 매우 어렵게 되었다한반도에서 남북의 군사적 균형이 갑자기 북한 우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북한은 쉽게 전면전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세력 균형의 우위를 차지하는 한 모든 협상에서 고지를 차지할 확률이 크다다만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는 있겠지만 군사력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 국력은 늘 한계를 지니기 마련이다남한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균형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데여기에서 가장 장애되는 것이 한국은 군사주권을 완전히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경제력으로 말하자면 세계 20위권의 나라가 되었는데 아직도 군사주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사실은 안타깝다기보다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변화한 것과 변화하지 않은 것

북한의 이데올로기정치체제군사우선주의 등은 오랜 역사를 통해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여러 가지 정책과 경제 현황그리고 사회 구조와 인민들의 의식은 상당히 변화하였음을 말했다다시 말해 북한사회는 표면적이라도 다원주의적 요소가 생기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정부의 통제가 과거 보다 훨씬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말이다예를 들어서 남한 비디오를 복사 판매하는 자와 보는 자를 처벌한다 하더라도 점점 한국의 비디오를 북한 인민들이 많이 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한은 국가부문이 민간부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그래서 자본주의의 발달도 국가의존적 경제 형태를 가지고 기형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그렇게 볼 때 김정은 정권의 붕괴는 쉽게 오지 않으리라는 전망 할 수 있다설사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이것이 북한이 앞으로 안정을 바탕으로 꾸준한 변화를 이룰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이유다.

나가는 말

지금껏 북한이 지극히 안정된 사회이지만 현재는 급격히 빠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논하였다그리고 변화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북한 사회의 본질즉 국민들의 의식혹은 이데올로기 교육의 효과까지 바꿀 수 있는 위력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통일 전에 할 일은 명확해 진다우선 북한이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그 변화를 가장 빠르게 하는 일은 서방 자본이 북한에 투자하는 방법이다그렇게 해서 북한의 생산수단까지 자본주의적 방식이 주도를 이룰 때 북한 사회는 총체적으로 다원주의적 사회가 될 것이고그것이 북한의 사회구조의식구조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물론 사회문화의 교류를 보다 왕성하게 하여 북한이 외부의 사정에 대해 더욱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 사회를 다원주의적 사회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우리는 북한의 외교적 군사적 입지를 고려해 볼 때 전략적 인내 정책보다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평화공존을 이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의 세력균형 이루어 내야 한다이 것을 위해 한국은 군사주권과 자주적 외교 역량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남한의 자주력 역량이란 국민의 이데올로기적인 단결력도 포함된다는 것이다북한에 대한 인식에 있어이데올로기적인 분열을 통해 이른바 남남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북한이 남한을 조정할 수 있게 만드는 상황을 야기한다북한은 남한 정권의 정통성이 떨어지거나 자기 지지세력이 많아질 때 종래의 대화추구 정책을 포기할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는 나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남한체제는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는 사회이기에그것이 남한 사회의 도덕적 우위를 드러내고 궁국적으로 남한의 잠재력을 증강시킬 것이다그러나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종북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모욕적 언사로 비판하여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숫자적으로 극소수인 극좌파와 극우세력이 여론 형성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도록 하여남한의 국민적 통합을 안정적 기조 위에 이루어야 할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