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섭리 목사 독립장로교회

시사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아닐지라도 만약 교회에서 정의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면 대부분의 성도는 정치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어쩌면 좌파와 우파라는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에 갇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의에 비추어 판단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정의의 참된 의미를 폐기시켜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여기에서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진영과 개인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근본주의 교회들로 편을 가르자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반면인간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사회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복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영과 육 모두를 돌보고 회복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미쉬파트와 짜데카라는 단어가 정의와 공의로 번역이 되어있다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삶에서 서로 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공평함을 추구하는 공의(짜데카)의 삶을 살아가지 못할 때에 이것을 회복하고 바로잡기 위한 교정적 행위로서의 정의(미쉬파트)가 필요하게 된다흥미로운 것은 구약에서 이 단어가 쓰일 때마다 이른바 4대 취약계층인 고아와 과부나그네와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하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그리고 이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채무탕감이삭줍기가난한 자들을 위한 별도의 십일조희년 등의 공동체적 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멋진 노래로 찬송을 부르고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릴지라도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지 않으며(렘 22:16), 정의와 공의의 삶을 살지 못하면 심지어는 그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암 5:21-24).

이제는 정의를 이데올로기에 갇혀 정치적인 이미지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삶으로 그려내야 한다공의의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드러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한 정의의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오늘 내 곁을 지나가는 지극히 작은 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마 25:40)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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